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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3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3월13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요나 3,1-10 루카 11,29-32 <사흘간의 바닥 체험> 예언자로서의 삶이 왠지 멋져 보이고 통쾌해보이고 그럴 듯 해보이지만 동전의 양면이 있듯이 마냥 승승장구하는 삶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백성들에게 전해야할 메시지의 핵심이 칭찬과 보상이 아니라 저지른 죄에 대한 고발과 멸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백성들 앞에 반대 받는 표적이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대부분의 예언자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처음 부르심을 받고 보인 첫 번째 반응은 강한 저항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댑니다. 저는 아직 어려서, 저는 부양가족이 있어서, 저는 말주변이 없어서 등등. 요나 예언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전해야할 예언의 리스트를 훑어보니 도저히 백성들에게 전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으로 부터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게 말이나 되는 행동입니까? 한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기를 쓰고 도망친다고 도망쳐봤지만 요나는 고작 하느님 손바닥 안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명에 대한 거부의 결과는 혹독했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 사흘간이나 머무는 특별한 체험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참 하느님께서도 참 재미있으십니다. 거부에 대한 벌로 육체적 질병을 겪게 한다든지,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게 하셔도 될 텐데, 요나를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물고기가 사람뱃속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사람이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아마도 커다란 고래뱃속이었겠지만. 고래뱃속 깊은 곳, 캄캄한 곳에서 사흘을 버티는 동안 요나의 인생은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됩니다. 절박한 상황 앞에 놓인 요나는 간절히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는 존재론적인 심오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결국 요나 역시 사흘간의 진한 바닥체험을 통해 참 예언자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나의 회심 여정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친근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 역시 우리와 비슷했습니다. 그가 좋은 신앙인이었지만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노력한다고 노력했지만 아직 두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때로 옹졸했고, 때로 비겁했습니다. 그러나 사흘간의 죽음체험을 통해 요나는 온전한 주님의 참 예언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드디어 그는 일말의 두려움 없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백성들 앞으로 다가섭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때로 거침없이 주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전하는 주님 말씀의 선포는 왜 이리 설득력과 호소력이 떨어지는 것일까요? 말씀 선포자인 우리들이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표시입니다. 보다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회심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니네베 사람들처럼 주님 앞에 성의를 보일 순간입니다. 그들의 요나 예언자의 강력한 경고 앞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임금으로부터 시작해서 하인들까지 회개의 표시로 비단옷을 벗고 자루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니네베 왕은 범국민적인 단식을 선포했고, 큰 뉘우침의 표시로 잿더미 위에 앉았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크게 회심하는 표시로 사람들만 자루 옷을 걸치고 단식을 하면 될 텐데 아무런 죄도 없는 소나 양, 낙타나 염소에게까지 자루 옷을 입혔으며 단식에 동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강제로 이상한 옷을 입히고 밥도 주지 않으니 동물들이 꽤나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 의지가 강력했던 것입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신 주님의 마음이 드디어 눈 녹듯이 녹아내렸습니다. 단단히 징벌하려던 주님께서는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그들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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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백광열

등록일2019-03-13

조회수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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