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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8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12월18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마태오 복음 1장 18~24절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고통을 겪게 됩니다. 병에 걸려 아파하거나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여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한숨짓거나 과도한 노동으로 지쳐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하느님을 원망하며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내가 고통을 겪을 때 하느님은 어디 계십니까? 나의 고통을 알기나 하십니까?’ 마치 나 혼자서 모든 고통을 감당하는 것 같고, 하느님은 저 멀리서 지켜보고만 계시는 듯 여겨집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것과 같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느님을 예수님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체험해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먼저 예수님에게서 임마누엘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멀리서 우리의 고통을 지켜보고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뼈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몸소 세상이 어떤지를 보고 느끼셨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알고 있는 유혹 중에 예수님께서 체험하지 않으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외로웠고, 피곤했고, 배고팠고, 사탄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또 처음 사목을 시작하실 때 마을 사람들로부터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는 야유를 들었고, 그의 가르침을 듣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동네에서 내쫓기도 하고, 심지어 절벽에서 밀어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또 단 한 사람의 종교지도자들도 그를 믿거나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그를 죽여라!’ 고 외치는 동족들에게 둘러싸여 모욕과 매질을 수난을 당하시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죠. 그러한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게 되면, 하느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나와 같은 고통을 겪으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전에 저도 예수님이 수난 받으시는 모습의 복음을 반복해서 읽고 묵상했던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군중에게 매질을 당하고 모욕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고, 그 느낌이 전해지면서 ‘어떻게 저런 고통을 받아낼 수 있으실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보다가, 과거에 저의 절망스런 모습이 갑자기 스쳐지나갔는데, 제가 절망해서 엎드리고 있는 모습이 계속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제 어깨에 손을 얹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괜찮아, 다시 한 번 일어서봐...”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으신 분이 나에게 위로를 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성당에 앉아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저 말고 다른 분들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위로와 힘을 얻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지 마비 장애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분도 십자가에 못 박혀 나처럼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고통을 겪으셨구나.. 나의 고통을 아시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손을 못 쓰게 된 나병환자들은 못에 박힌 예수님의 손을 보며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불구가 되셨구나..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에도 그 상처를 지니고 계시구나..’ 하며 위로를 얻고 동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의 고통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셨고 그 상처를 지니고 계십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임마누엘 하느님, 곧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임마누엘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사시는 동안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셨는데,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하신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곧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를 세우시고, 예수님이 하시던 일, 곧 복음을 전하고 아픈 이들을 돌보고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공동체의 지체들에게 맡기셨습니니다. 이러한 결정은 우리가 서로 도와가며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라는 말씀이시겠죠. 이런 경우와 비슷합니다. 축구 선수가 운동을 하다가 발목을 삐면 그는 게임을 떠나 잠시 쉬어야 합니다. 쉬지 않으면 발목이 망가져서 다시 축구를 할 수 없게 되겠죠. 마찬가지로 우리 공동체 안에 고통을 받고 있는 지체가 있다면 공동체가 관심을 가지고 돌봐줘야 합니다. 그래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공동체가 건강해질 수 있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해낼 수 있겠죠. 만일 다른 지체의 아픔에 무관심하고 도움을 주려하지 않는다면, 그 모습은 암세포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한 세포가 다른 세포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성장하고 번성할 때, 그 세포를 암 세포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몸에 퍼지게 되면 결국 생명을 잃게 되겠죠.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각자의 세포가 머리가 지시하는 것에 충성하고 다른 세포들을 밟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하겠죠. 마찬가지로 우리 공동체가 살아남으려면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지체들에게 무감각해서는 안 됩니다. 실직자나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이나 이혼한 사람들, 노인들이나 결손 가정 아이들, 그리고 투병중에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이 머리이신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이며 함께 사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로서로 돕고 슬픔을 나누고 고통을 함께 하는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에게서 임마누엘 하느님, 곧 하느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심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주간 동안 기도 안에서, 또 공동체 안에서 임마누엘 하느님, 곧 나와 늘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하느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사랑을 실천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어린이 미사를 하기 전에 복사 아이들에게 물었다. “살면서 힘든 게 뭐야?” “공부하는거요.” “숙제하는거요.”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했는데, 정말 착하고 순수한 아이가 어울리지 않는 대답을 해서 많이 웃었다. “나이 먹는 게 제일 힘들어요.” 인천교구 김기현 요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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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백광열

등록일2018-12-18

조회수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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