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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연중 제15주일 농민주일

7월15일 [연중 제15주일 (농민 주일)] 아모스 7,12-15 에페소 1,3-14 마르코 6,7-13 <겸손하고 소박한 영혼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마르 6,8-9) 저희 살레시오회가 한국 땅에 진출한 지 벌써 50여년이 됐습니다. 50년을 넘어서면서 아쉽게도 몇몇 선배님들께서는 먼저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한 평생 수도생활을 해오시면서 인간적 나약함이나 부족함이 없지 않으셨겠지만, 다른 무엇에 앞서 수도자로 삶을 잘 마무리 지으셨다는 것 자체로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저희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모시고 있었던 할아버지 수사님의 장례식 때가 생각납니다. 돌아보니 수사님은 젊은이들로만 이뤄진 저희 공동체에 큰 선물이자 기쁨이었습니다. 기나긴 투병생활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지요. 늘 장난스런 얼굴로, 손을 꽉 쥐시며 후배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시던 재미있던 어르신이셨습니다. 수사님을 땅에 묻고 돌아와 수사님께서 머무셨던 방에 들어갔는데, 어찌 그리 황망하던지요. 수사님께서 남기신 소지품을 훑어보면서 다시 한 번 수사님의 가난하고 검소한 삶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겨놓고 떠나신 것은 겨우 낡은 옷가지 몇 벌, 이젠 구식이 된 라디오 하나, 쓰시던 안경, 틀니, 다 합해서 한 상자도 되지 않았습니다. 단 한번도 당신을 위해 물건을 사지 않으셨던 분, 거의 외출이나 외식을 하지 않으시며 공동체에서 머무르시던 분, 단 한번도 공동기도에 빠지지 않으셨던 분, 언제나 먼저 소매를 걷어붙이시고 삽을 드시던 분, 참으로 좋은 모범을 저희 후배들에게 남겨주셨습니다. 언젠가 제가 건강문제로, 또 성소문제로 오락가락할 때였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아 결국 '떠나기로' 거의 마음의 결정을 짓고 수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수사님께서는 길게도 아니고 딱 한 말씀만 해주시더군요. "서원한 수도자가 가긴 어딜 가! 그냥 계속 가! 가다보면 길이 생겨!" 단 한마디 말씀, 단순한 말씀, 투박한 한마디 말씀이었지만 선배로서 방황하는 후배에게 건네주신 참으로 값진 말씀이었습니다. 수사님께서 제게 건네주셨던 그 말씀을 이제 저는 후배들에게 다시 건네주고 있습니다. 지난달 저희들은 또 다른 선배 수사님 한분과 작별했는데, 수사님께서는 한국 살레시오회 초창기 회원이셨기에 어쩔 수 없이 평생토록 수도원에서 궂은일만 도맡아 해 오셨던 무척이나 겸손했던 분이셨지요. 형제들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베풀면서도, 자신을 위한 식탁에는 멸치 한가지로 족했던 분이셨습니다. '새까만' 후배들이 줄줄이 버티고 있음에도 언제나 가장 먼저 공동체 경당에 도착하셔서 이것 저것 미사 도구를 챙기시던 분, 자그마한 체구의 수사님께서 덩치가 산 만한 후배들 고민을 자상하게 들어주시고, 일일이 등을 두드려주시던 수사님은 진정 저희 한국 살레시오회의 거목이셨습니다. 그런 수사님 영정 앞에 저희 후배 100여명이 모였지요. 한 목소리로 크게 연도를 드렸습니다. 연도를 드리고 있는데, 수사님 트레이드마크였던 빙긋이 웃으시던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툭툭 등을 두드려주시던 손길도 느껴졌습니다.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호탕한 목소리가 제 귓전을 울리더군요.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도 수사님께서는 수도자로서 좋은 모습을 저희 후배들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켜주고 가시더군요. 떠나시기 오래 전에 장기 및 시신 기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늘 하시던 말씀이 이랬습니다. "어디든 흔적 남기지 말고 내리(살레시오 캠프장이 있는 서해 바닷가, 수사님의 노고와 진한 애정이 깃든 곳) 앞바다에 뿌려줘!" 장례미사가 끝난 후 장지나 화장터가 아니라 병원으로 떠나시는 수사님을 배웅하던 저희 후배들은 다시 한번 수도자로서 봉헌생활을 갱신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떠나는 제자들을 향해 한가지 당부말씀을 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한평생,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으시고 오로지 수도자로서 삶에 충실하셨던 선배님들, 그분들이 오랜 풍랑과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셨던 이유, 한결같이 든든한 바위 같던 이유, 그리고 영예롭게도 수도자 신분을 간직한 채 삶을 잘 마무리한 배경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주님 말씀 따라 한평생 청빈지도를 생명처럼 지켜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외에 비본질적이고 부차적 요소들로부터 끊임없이 이탈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은총의 저녁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아갔던 수사님들의 영혼, 그리고 먼저 떠나가신 모든 겸손하고 소박한 영혼들을 우리 주님께서는 기쁘게 당신 나라에 받아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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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백광열

등록일2018-07-15

조회수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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