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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5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

5월25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 독서: 야고보 5,9-12 <자비의 계절에> 귀엽게 생긴 어린 손녀를 사랑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는 한 노부부를 만났습니다. 손녀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두 분에게 있어 손녀는 존재 자체로 행복이요 천국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손녀가 아무리 투정을 부려도 그것조차 사랑스러웠습니다. 아무리 귀찮게 칭얼거려도 한없이 너그럽습니다. 실수로 애지중지하던 골동품을 깨트렸는데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입장에서는 손녀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모든 것이 용서되고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 인간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시선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편 103장은 이러한 우리 주님의 속성과 본질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모든 아픔을 없애는 분이십니다. 경각에 달한 우리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우리 머리 위해 씌우는 분이십니다. 분노에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는 분이십니다. 우리 잘못을 끝까지 캐묻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분노의 원인을 제공하더라도 끝끝내 우리를 향한 화를 품지 않는 분이십니다. 야고보 사도 역시 동일한 선상에서 우리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은 동정심이 크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자비는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자비를 베푸시는 것은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입니다. 그 자비 안에서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납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자비는 애끓는 사랑, 온유한 배려, 너그러운 용서로 표현됩니다. 바야흐로 자비의 계절이 도래했습니다. 아시는 바처럼 자비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주제이자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시대? 자비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지금 이 순간 우리 시대, 우리 사회 우리 가정 안에 자비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표현일 수 있겠습니다. 오늘도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자비의 선교사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 자비의 결핍 시대에 우리 각자가 자비의 문화를 건설하는 사도로 살아달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자비는 하느님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입니다. 자비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궁극적인 최고의 행위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어느 곳이든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나야 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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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백광열

등록일2018-05-25

조회수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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