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머리 지역
교우촌의 성장

근현대 유형무형의 신앙 유산인 공소 강당들
  • 공소와 교우촌의 성장으로 가정집을 이용하던 공소가 좁자 음섬공소(1957년)부터 교우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근현대 유형무형의 유산인 강당을 건립하였다.
    그 다음은 새터(1960년)강당이 그리고 원머리(1962년)강당이 차례로 건립되었다.

                        음섬(음세미) 공소

                        새터(매산) 공소

                        원머리(한정) 공소

본당 공동체 형성

  • 역사적으로 보나 교세 면에서 보나 신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은 원머리, 새터, 음섬 세 공소였다.
    이 때문에 1960년 이후 이 지역에 두 차례에 걸친 본당 분가가 이루어질 때 원머리 지역(1961년 통계에 의하면 세 공소 849명)은 교세수로 보나 역사성으로 보나 본당이 설 자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읍소재지 관할이라는 이유로 신합덕 본당(1960년)이, 그리고 면소재지라는 이유로 1975년 신평에 본당이 설립되었다.
원머리 교우촌 특징
  • 원머리라는 지명은 바닷가 원을 막은 머리 부분이라는 뜻을 지닌 '언두리'가 원머리로 변형된 말이다.
  • 특징 1  이존창이 내포지역에 내려(1785년)와 복음을 전파할 초기 때부터 시작하여 박해시대 때 많은 교우들이 피신하여 정착한 곳이며 그 후 돌아온 교우들과 공소를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그 신앙의 명맥을 이어온 보기 드문 바닷가 교우촌으로 한국 천주교회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살아있는 곳이다. (연결성)
  • 특징 2  오늘날 이곳은 제방이 쌓여져 사방이 농경지로 변하면서 옛모습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공소와 강당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옛 삶과 흔적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역사성)
  • 특징 3  섬 같은 작은 이 지역에 공소가 3개나 설립되어 있으며, 10가구 중 7~8가구가 교우 가정이다. 그리고 신평본당 설립 이후 이곳 지역에만 열두분의 사제와 열두분의 수도자가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