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전래와
원머리 지역 신앙전파

한국 천주교회의 전래와 태동
  • 한국 천주교회는 당시 참 진리를 추구하던 유학자들이 서양의 과학과 교리를 탐구하면서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인 유일한 나라이다. 1784년 3월 세례를 받고 돌아 온 이승훈이 동료들에게 세례를 줌으로서 최초의 조선 천주교회가 태동되었다.
  • 1785년 초, 명례방(지금의 명동) 김범우의 집에서 신앙 모임을 하던 중 관헌에게 발각되어 초기 신앙 공동체가 와해되었다.
  • 이때 권일신의 제자였던 유항검과 이존창이 고향으로 내려가 신앙전파에 온 힘을 쓴다. 이로써 유항검은 호남에서 이존창은 내포 지역에서 신앙의 사도가 되었다.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
  • 1785년 고향에 내료온 이존창은 내포(삽교천, 무한천)일대에 신앙을 전파하는데 온 힘을 다 쏟으며 원머리지역(음섬, 신당)에도 신앙을 전파하였다.
  • 따라서 내포지역은 한국천주교회의 '신앙의 못자리'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19세기 내내 지속된 4대 대박해 속에서 수 많은 순교자를 탄생시킴으로써 '순교자의 묘자리' 라는 이름도 얻어 조선 천주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원머리, 신앙 공동체 형성
  • 이존창은 1791년 말 여사울을 떠날때까지 내포 전역에 복음을 전하는데 당시 충청도 관찰사 박종악의 수기(1791~1792)에 의하면 원머리 지역에는 이미 초창기부터 복음이 전해졌으며 신앙공동체가 크게 형성됐음을 잘 알 수 있다.
  • "내포의 이른바 강문리, 우평리는 덕산, 면천, 아산 접경지역의 포구입니다. 홍주 신당(新堂), 신평리(新平里)의 엄도(奄島, 현지명 음섬)는 또 이웃에 있는 큰 마을입니다. 사는 백성이 거의 다 사학(邪學)을 하는데 그 중에 간혹 제 손으로 책을 불태우고 다짐을 바치고 풀려난 자가 있기는 하지만 온 마을이 거의 다 물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