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레이아웃이미지

2020년 하반기 신앙강좌 5강(김동규미카엘신부님, 11. 19.)

김동규미카엘신부님의 신앙강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과 김장철이고 이 날은 비가 내린 날

여러가지 유혹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신앙의지로 참여해 주신 여러 신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매번 열정으로 강좌를 열어주시는 본당신부님께도 진심감사드립니다.

'참신앙인 한사람이 백명의 천명의 신자들을 참신앙의 길로 이끌 수 있는 목자가 될 수 있다.'고 신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가 아닌 12제자였으니요~

다함께 말씀으로 무장된 참신앙인이 되어 어려움과 시련과 유혹을 극복하고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내 자유의지를 잘 사용하여야겠습니다.

 

* 제목 : 2020년 하반기 신앙강좌 5강

* 일시 : 2020년 11월 19일(목) 7시 저녁미사후

* 장소: 성당

* 참여인원: 40여명

* 나눔반 : 5개반 운영 (27명 참석)

* 내용은 : 거룩함으로의 초대1(빵만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가야 할 인간 - 김동규 지음-)

            : 증거의 삶과 구원의 선물인 영생편

           1.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의 가르침

               - 삼구와 광야의 유혹

               - 칠죄종과 그 순서

               - 칠극대전과 칠죄종

           2.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예수님 말씀

              - 자신의 내적 관계를 새롭게 하는 길 단식

              - 이웃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길, 자선

              -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길(순명), 기도

 

*요약을 해 본다면 이렇습니다.

 

- 예수님께서 받은 유혹 3가지

  : 마귀는 왜 예수님을 유혹하셨을까요?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가 받고 있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으려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없이도 잘 살 수 있어~', ' 내게 하느님은 없어도 돼~', '나보다 하느님이 뒷전이야~', '내가 하느님보다 우선이야~'라는 교만(불신, 불순종)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과 삼구와의 관계정립, 그리고 삼구에 연관된 칠죄종과의 정립, 유혹, 삼구, 칠죄종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제시해 놓은 칠극대전과의 새로운 관계의 정립 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예수님 받은 유혹

삼구

칠죄종 

칠극대전(진훈) 

 빵유혹(생존을 위한 욕구에 대한 육신유혹)

식욕

성욕

수면욕

탐식

음욕 

나태

 절제

정절

근면

 경배유혹(생애에 받는 욕망에 대한 세속유혹)

 재물욕

명예욕

권력욕

 인색

질투

분노

은혜

관용

인내

 시험유혹(영생갈망에 대한 영생유혹)

 마귀 (불신/불순종)

 교만

 겸손

- 식욕은 탐식과 관련되어 있으며 탐식을 이기는 방법과 길은 절제입니다.

- 성욕은 음욕과 관련되어 잇으며 성욕을 이기는 방법과 길은 정절입니다.

- 수면욕은 나태와 관련되어 있으며 수면욕을 이기는 방법과 길은 근면입니다.

- 재물욕은 인색과 관련되어 있으며 재물욕을 이기는 방법과 길은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 명예욕은 질투와 관련되어 있으며 명예욕을 이기는 방법과 길은 관용을 베푸는 것입니다.

- 권력욕은 분노와 관련되어 있으며 권력욕을 이기는 방법과 길은 인내로 참아내는 것입니다.

- 불신, 불순종은 교만과  관련되어 있으며 불신과 불순종을 이기는 방법과 길은 겸손입니다.

* 칠극은 칠죄종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덕을 쌓아감으로써 대적할 수 있는 완덕을 쌓고 수행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 네가 잘못했어'라고 지적질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의화보다는 성화의 삶이어야 함을 다시한번 일깨워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이 아니라 자비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7가지 덕목의 첫째는 남에게 겸손함으로써 교만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 마귀의 유혹중 '잘하라'라는 것은 마귀의 노예가 되라는 유혹입니다. 하느님보다 악의 두목인 마귀의 노예가 되어 하느님의 거룩한 영을 없애버리려는 정말 무서운 유혹이지요.

- 질죄종은 죄를 짓게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죄짓게 하기도 합니다.

- 삼구, 칠죄종 모두는 예수님께서 받았던 3가지 유혹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 3가지 유혹은 구원받는데 방해를 하는 마귀의 작용이며 마귀의 유혹입니다. 즉 영혼구원을 방해하는~

- 모든 유혹은 결국 불로장생, 영생갈망에 있습니다. 또한 모든 유혹의 근본은 식욕입니다. 즉 영원히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되니까요.

- 재물에 욕구와 욕망이 들어가면서 우리를 파멸시키고자 합입니다.

- 선악과를 따먹은 불순종은 우리에게 고통과 죽음과 파멸을 가져왔습니다.

- 인간이 살아가면서 받아야 할 고통은 생, 노. 병, 사이외에 미운사람과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고통, 뜻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입니다.

- 창세기 3장 '네 죄로 말미암아' 자연과 갈리게 됩니다. '낱알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그것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분열이 세상에 왔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분열, 인간과 인간의 분열, 아담와 하와의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하느님과 분열, 부부와 형제자매들의 분열, 민족과 민족의 분열, 상부의지와 하부의지의 분열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원죄의 확산'이라고 합니다. 

 

 

* 아담이 만약 "하느님 죄송합니다."라고 용서를 청했더라면?  그러나??? 아담의 용서청함을 포기한 죄로 말미암아 고통과 죽음과 분열이 온 것이다. 아담이 핑계를 대지 않고 하와를 나무라지 않고 즉 죄를 "네가 아닌 내가로 너에게서 나에게로'돌렸다면 원죄의 확산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원죄의 확신이 지금 이시대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제 탓이옵니다!" 수도 없이 미사때마다 용서을 구하면서 진작 마음으로는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음이 또한 죄가 확산될 수 밖에 없음이다. 말만~ 말만~ 말만으로만~ 제발 하나라도 내 탓으로 돌려볼 수 있는 신앙의 용기는 없는 것일까? 불가능할 것인가?

* 하느님께서 "아담아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라고 찾으신 것은?, 부르신 이유는?

 용서해 주실려고~ 원죄는 이미 용성 받았을 것이다.  

-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말씀으로사는 영적인 사람인 것이다. 사람인 것이다. 사람인 것이다.

-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느님성을 잃어버리고 겁이 났다. 그래서 아담을 유혹한 것이다, 아양 떨면서, 거짓말 치면서, 아담이 하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었다. 선악과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담의 반응은? 입에서 나온 것은 욕이었다. 최초의 욕!이 이때 생긴 것이다. 욕은 말에 감정이 들어간 말이다. 그러면 욕이 되는 것이다. 하와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이 두려웠다. 그래서 숨었다. 하느님께서 "너 어디 있느냐?" 전지전능하신 분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셨고 찾으셨을까? 아담과 있어야 되는 자리에 없었기 때문었음이다. 사람은 하느님성을 닯았기 때문에 깨끗하고 거룩하고 순수하고 착하고 올바르고 거룩한 자리에 있어야 함이다. 그러나 둘은 숨어버렸다. 왜냐하면 이미 어둠의 세상에 있었기 때문에 빛이, 낮이 두려웠던 것이다. 이때 아담이 "하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요" 용기를 내서 용서를 청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담은 하와때문에, 뱀때문에 라고 핑계를 대고 말았다. 하와는 생각했다. '내가 저런 놈을 믿고 지금까지 살았단 말인가?' 배신감을 느꼈으며 평생 그늘막이 되어 주고 넓은 어깨로 감싸주어야 할 아담이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하와가 따먹으라고 해서 따먹었을 뿐입니다,"라고 핑계를 대며 말했으니, 그것을 들은 하와의 마음은 어땠을까? 또한 그 말을 듣는 하느님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듯 아프셨을까? 용서해 주려고 하는 부모같은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 있었는데~~~

"제가 잘못했습니다"란 이 몇 단어가 그렇게 어려웠단 말인가?

이로 인해 원죄는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지금 이 시대에서 매순간순간 우리에게 들이대고 있다.

"너 어디 있느냐?"라고 말이다. 우리가 제대로 있어야 될 자리에 지금 있는가? 한번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이 두 말이 얼마나 우리 모두를 축복의 길로, 영생의 길로 이끄는 말인지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말로만이 아닌 마음과 행동으로 (무엇보다 하느님께 선물받은 자유의지 사용으로) 용기있게 살아가는 참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부님~.

 

 - 마태오 6장 단식, 자선, 기도의 성경이야기는 우리가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올바른 단식, 올바는 기도, 올바른 자선 등 올바른이 들어가 있습니다.

- 단식, 자선, 기도는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구원의 핵심 열쇠입니다.

- 단식은 창조주 하느님을 알아보는 첫 의지의 행위가 단식입니다. 진정한 단식은 육신의 유혹을 떨쳐 버리고 하느님을 향하게 만드는 것과 하느님의 뜻이 올바로 설 수 있도록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을 보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인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야?"(이사야 58. 6-7)

- 자선의 궁극적인 의미는 나한테 초점을 맞추고 누려왔던 모든 삶의 방향을 하느님과 이웃에게로 돌리라는 것입니다.

- 기도는 자신을 비우는 순명의 행위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내려놓는 무심의 마음도 기도입니다. 단식, 자선, 이웃에게 베푸는 희생 등 자기 자신을 비우는 이 모듬 것들이 기도의 내용이며 행위입니다. 

- 단식과 자선, 이 둘으 본래 가치를 온전히 드러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이 단식과 자선인데 이것을 토대로 하느님과 이웃과 소통하는 행위와 말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 단식과 자선과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축복과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성경을 이것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끝.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확장자는jpg신앙강좌5강.jpg

등록자배상희

등록일2020-11-22

조회수54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