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소연혁
◈ 충청도 관찰사 박종악의 수기(1791~1792년)에 의하면 이미 이존창이 내포에 복음을 전할 때부터 신평의 엄도(음섬)와 신당쪽에 복음이 전해져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 수 차례의 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이곳으로 피난 오면서 자연스럽게 교우촌이 형성되었지만 병인 대박해(1866~68년)시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때 원머리 지역에서 잡혀가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치명한 분이 20명이다.
◈ 1883~4년 두세 신부의 첫 방문으로 신앙 공동체가 활기를 띄면서 더욱 공소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두세 신부에 의해 내포지방 최초로 언문과 경문을 가르치는 교리 소학교(1891년)가 설립되었다. 신자들의교리교육 및 냉담자 권면, 예비자 교리교육 등도 이곳에서 실시되었다.
◈'원머리'공소가 1914년 행정개편에 의해 '원머리'를 '한정'으로 사용하여 왔으나, 예 원명 찾기 일환으로 2016년 교구의 승인을 얻어 공소 명칭을 '원머리'로 변경하여 현재 사용 중에 있다.
■ 공소(강당) 개요
◈ 옛 공소는 1930년경 건립된 토벽집 초가지붕 형태의 공소였으나 현재는 멸실되었고 1962년 현 공소(강당)를 봉헌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강당은 시멘트벽돌조 2층으로 장방형 맞배지붕 형태이며 정면 중앙에 종탑이 위치한다.
◈ 평면은 장방형 평면으로 현관, 회중석, 제단부로 이어지는 6개 베이 규모이며 출입구 상부는 중2층 성가대가 위치한다. 제단부 아래에 지하실이 축조돼 있는데 이는 공소전(公所錢)인 벼와 공물들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 사용되었다.
◈ 정면은 모두 출입구로 사용되었고 창문은 쌍여닫이창이었으나 수리하면서 변형되었다.
◈ 정면 1,2층 출입구와 창호의 아치가 돋보이며 처마와 건물 뒤쪽 박공부위에 장식문양이 연속적으로 새겨져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 원머리공소는 근대시기에 건립된 천주교 건축유산으로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 공소(강당) 건축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