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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삽교 물줄기 따른 순례코스

여사울성지

 

여사울 성지-예산 여사울 이존창 생가터(충청남도지정 기념물 177호)

 



여사울 성지는 한국천주교회의 못자리이며 충청도에서 최초로 복음의 빛이 전해진 곳이다.  이존창 ( 루도비꼬 곤자가 ) 사도의 사도의 생가지로 알려져 있는 이 곳 여사울은 내포 천주교회의 심장이며 신앙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국 천주교회는 서양의 선교사에 의해 천주교가 전해진 것이 아니라 학자들의 학문적인 연구를 통해 시작이 되었고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과정에 바로 이 곳 여사울 출신인 이존창 사도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어느 누구도 이 곳 여사울 출신인 이존창 사도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어느 누구도 이 곳 여사울 성지가 한국 천주교회의 못자리 였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내포 천주교회와 여사울 신앙 공동체 중심에는 바로 이존창 사도가 언제나  한 가운데 있었다.

1785년 영세를 받고 고향 여사울에 돌아온 이존창 사도는 그의 학식과 아름다운 품행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사게 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특별한 능력으로 날마다 많은 사람들을 그의 집을 찾아 왔다고 한다. 다블뤼 주교님의 기록에 의하면 “여사울에 살던 30여 가구가 넘는 그의 친척뿐만 아니라 그 마을에 사는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전교 대상이었다.

이처럼 이존창 사도의 전교 활동은 점차 신분과 지역의 범위를 넓혀갔으며, 그만큼 많고 다양한 이들이 진리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존창 사도의 전교로 김대건, 최양업 두 신부님의 집안이 입교했다는 사실이다.

(이존창의 딸 멜라니아 :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의 둘째 아들 김택현에게 시집가 김대건 신부의 조모가 된다.

시집가 김대건 신부의 조모가 된다. 사촌 누이 이 멜라니아:최양업 신부의 모친 이성례 마리아의 숙모가 된다) 이렇게 여사울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신앙 공동체 였고 내포 천주교회의 출발지이자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1866년의 병인박해 때까지 신앙의 맥이

이어지게 된 곳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 박해를 겪으면서 2분의 성인, 2분의 하느님의 종, 여러 명의 순교자를 탄생시키는 순교자의 못자리 역할도 하게 된다.

다블뤼 주교도 훗날 순교자들의 많은 수가 “오늘날(1850년대)의 천주교 신자들 대부분이 그 때 이존창이 입교시킨 사람들의 후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존창 사도의 전교 활동은 곧 ‘내포 천주교회의 설립과 출발이었고 내포 천주교회는 바로 여사울의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이 된 것이다. 이렇게 여사울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고향으로서 신앙의 선조들의 얼이 숨 쉬는 우리 믿음의 고향이다.

 

 

 


 

여사울 성지의 특징


1. 이존창 사도의 고향이며 그의 생가터가 있는 곳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못자리.

2. 여사울 신앙 공동체-내포 천주교회의 출발지이자 중심지 역할

3. 1839년 기해박해 때 모방, 샤스탕 신부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 체포되 순교를 한 홍병주(베드로), 홍영주(바오로) 형제 순교 성인들이 내려와 신앙 생활 한 곳.

4. 김광옥(안드레아), 김희성(프란치스코) 부자(父子) 순교자로 ‘하느님의 종’로 선정되신 분들의 고향이며 출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