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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정호승-

 

 내 짐 속에는 다른 사람의 짐이 절반이다.

다른 사람으 짐을 지고 가지 않으면

결코 내 짐마저 지고 갈 수 없다.

길을 떠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짐은 멀리 던져버려도

어느새 다른 사람의 짐이 

내가 짊어지고 가는 짐의 절반 이상이다.

풀잎이 이슬을 무거워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내 짐이 아침이슬이길 간저맇 바랐으나

이슬에도 햇살의 무게가 절반 이상이다.

이제 짐을 내려놓고 별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지고 온 짐덩이 속에

내 짐이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비틀거리며 기어이 짊어지고 온

다른 사람의 짐만 남아 있다.

-시집 <밤값>(창비, 2010)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지 모처럼 여행을 떠나게 되면 옷을 비롯해서 준비물을 많이 챙기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막상 여행지에서는 챙겨간 준비물들을 사용하지도 않고 그대로 가져와 버리니 그것들은 말 그대로 쓸데없는 짐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런 짐은 여행뿐만 아니라 해가 바뀔 때마다 돌아보는 자신의 행적에도 적용되어서 올해를 돌이켜보면 고스란히 어깨를 짓누르는 반성거리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정호승 시인은 그런 생활 버릇을 "다른 사람의 짐"에 비유해 본다. 이때 다른 사람의 짐이란 평생 우리가 살아가면서 떨쳐버릴 수 없는 세상의 눈치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해가 갈수록 세상의 눈치를 보는 부담이 점점 커져만 가는 사례를 우리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같은 대중 영상매체에 집착하는 생활 모습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런 대중 영상매체야말로 "다른 사람의 짐"중에서도 가장 부담이 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짐에 짓눌리다보면 나를 추스르고 곰곰이 챙겨야만 할 본래의 내 짐은 종적이 묘연해져 버린다. 그래서 해가 바뀔 때마다 "내가 비틀거리며 기어이 짊어지고 온 다른 사람의 짐만 남아 있"는 현실을 자책하게 된다.

  인생이란 어차피 짐을 지고 살아야만 하는 운명 속에 놓여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매일 잠에 들기 전이나 여행을 떠나거나 또는 한 해를 보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보는 순간의 용도는 내 짐의 정체를 살펴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마찬가지로 새해를 맞이하는 잠시 동안의 마음가짐도 "다른 사람의 짐"을 부질없이 욕심내지 않으려는 가난한 마음으로 출발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성경에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적혀있다. 그 마음은 아마도 현대문명이 강요하는 과잉의 욕심과 소비의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는 자세를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이경호(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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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배상희

등록일2019-06-11

조회수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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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열

|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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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은 이슬을 무거워 하지 않는다는 말이 와닫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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