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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4일 사순 제3주일

3월24일 [사순 제3주일] <어떠한 시련을 주시든> 나이는 어렸지만 상습가출에다 도벽, "과감하고도 다양한 수법" 등으로 제 머리 꼭대기 위에 있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봤지만 속수무책이었지요. 마침내 마지막 수단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고마우신 동네 파출소 경사님과 미리 각본을 짰습니다. 오랜 휴가(?)를 마음껏 만끽하면서 사고란 사고는 다 저지르고 귀가한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저는 파출소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즉시 경사님이 도착했습니다. 각본은 이랬습니다. 저부터 먼저 혼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잘 돌보지 않고 왜 밖으로 돌게 하느냐?" 백배사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두가 제 불찰입니다. 저 아이는 뭐가 뭔지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아이는 죄가 없습니다. 아이를 잘못 교육시킨 저를 유치장에 넣어주십시오." 그 순간, 워낙 강심장이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던 아이 심경에 뭔가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경사님은 냉정한 얼굴로 "이번만큼은 워낙 건수도 많고 피해자들도 더 이상 못 봐준다니 나도 어쩔 수 없다"며 아이를 연행해 가려 합니다. 그 순간 제가 경사님을 붙들고 사정사정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한번만 봐주는 식으로 각본이 짜여져 있었습니다. 충격요법은 다행히 잘 먹혀들어 갔습니다. 우선 아이는 그 일로 인해 잔뜩 겁을 먹었고 기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런 잘못도 없이 혼나는 제 모습, 자기를 구하기 위해 사정사정하는 제 모습에 아이는 미안해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충격요법"에 힘입어 아이의 가출이나 비행은 눈에 띄게 수그러들었습니다. 오늘 사순 제3주일을 맞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듣기에 참으로 섬뜩한 말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강한 경고성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고 계십니다. "실로암 탑이 무너질 때 깔려죽은 사람들이 기억나느냐?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망할 것이다." 이어서 더 강경한 어조로 우리에게 신속한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내가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따 볼까 하고 벌써 삼년째나 여기 왔으나 열매가 달린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쓸데없이 땅만 썩힐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아예 잘라 버려라." 예수님 경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도대체 왜 자비 충만한 예수님께서 이토록 무서운 경고 말씀을 건네시는가에 대해서 묵상해봤습니다. 묵상 결론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던지시는 강한 경고성 발언조차도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경고 이면에는 우리 죄인을 향한 예수님의 극진한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 어떤 부모가 자기 자녀의 타락과 방황을 보고 수수방관만 하고 있겠습니까?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타이르기도 하고, 사정도 해보고, 때로 파격적으로 감싸 안아 주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모든 노력이 먹혀들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합니까?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마음에 없는 말도 하게 됩니다. "너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가면 자식 하나 없는 것으로 생각하겠다. 호적에서 빼겠다" 등등.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라면 아이가 고층 아파트 베란다 근처에 어른거리지 못하도록 혼을 낼 것입니다. 아이가 뜨거운 국 냄비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회초리도 들 것입니다. 아이가 빨간 신호등인데도 길을 건너간다면 호되게 야단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강한 경고 그 이면에는 우리를 향한 한없는 사랑과 연민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배신과 타락을 안타까워하시는 하느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에게 발걸음을 되돌리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느님께서 오늘 다시 한번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결국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이 어떠한 시련을 주시든, 어떠한 고통과 십자가를 주시든 그 모든 행위 그 이면에는 우리를 향한 극진한 사랑, 강력한 구원의지가 자리잡고 있음을 기억하는 사순 제3주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랑은 1000개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가 갖게 되는 증오도 집착도 미움도 결국 사랑의 한 모습입니다. 사랑하기에 미워도 하고 질책도 하고 상처도 주고받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의 탈선이나 그릇된 삶 앞에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안고 있는 부족함이나 취약점들을 용기 있게 지적해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사랑이고 이웃을 성장시키는 노력입니다. 우리가 서로 남남이라면 상처나 고통을 주고받을 하등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기에 상처도 고통도 주고받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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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백광열

등록일2019-03-24

조회수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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