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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 신앙생활의 중심이다”[

“현장이 신앙생활의 중심이다”[인터뷰] 골롬반선교회 창립 100주년, 오기백 신부

 

세계 17개 나라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며 가난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정의, 생태적 위기, 종교간 대화와 협력 등을 위해 활동하는 성 골롬반외방선교회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21일 서울 골롬반 본회에서 창설 100주년 한국지부 준비위원장 오기백 신부를 만나 한국 골롬반회의 역사와 현재 교회의 모습, 앞으로의 방향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문)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소감은?

오 신부 : 우리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비록 골롬반 회원들 한 분 한 분을 보면 미약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하느님께서 나름대로 그분들을 통해 역사하셨다는 것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도 신앙을 확인했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문)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지부는 어떤 활동을 했는가?

오 신부 : 작년 12월 초에 광주에서 봉헌한 개막미사로 기념이 시작됐다. 골롬반회가 한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광주대교구에서부터 구체적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광주는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활동한 골롬반 선교사가 거의 300명인데 이들을 기억하면서 제주 이시돌센터에 나무 300그루를 심기도 했다. 작지만 ‘골롬반 숲’이다. 먼저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함과 동시에 교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창조보전이라는 생태적 차원의 의미도 있다.

본회 정원에 골롬반 동상도 하나 세웠다. 다른 데는 많이 있지만 지금까지 이곳에 주보성인의 동상이 없었다. 골롬반은 자연을 너무나 사랑하셨고 자연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음을 많이 강조하셨다.

지난 여름에는 피지, 중국, 미얀마, 미국, 영국, 페루 지부의 청년 스무 명을 초청해 2주 동안 한국교회와 문화를 체험했다. 배경, 역사와 문화가 다른 젊은이들이 함께 지내며 선교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하고 골롬반을 더 깊이 알아가는 프로그램이었다.

(문) 골롬반회 안에서 한국지부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가?

오 신부 : 일제 강점기 때 신부들은 이동할 때 경찰에게 보고하고, 조사 받고, 연행되거나 자택에 감금되고 감옥에 가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는 7명이 순교했다. 어려움에 처한 한국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한 분들이다.

전쟁 뒤에는 너무 궁핍해 구제사업에 힘썼고 산업화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많은 이들이 이동하자 선교사들도 도시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본당을 많이 개척했다. 1980년대에는 노동사목, 빈민 사목, 대학생 사목, 병원 사목, 단도박, 단주운동을 선배들이 한국 교회로 도입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해 한국 교회에게 선교적 교회가 되라고 촉구했는데 불과 30년밖에 안 됐는데도 한국지부는 해외로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이처럼 시대의 요청에 따라 우리 선교의 방향을 바꿔서 함께하고자 했던 모습이 한국에서 우리의 역할이다.

전체 골롬반에서 한국 지부는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원주교구에서 활동하셨던 신부님들이 지학순 주교와 가까이 지내면서 인권운동을 많이 했다. 지학순 주교가 감옥에 갇힌 것을 계기로 그분들이 정의를 위한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1976년 세계총회에서 한국 대의원들이 골롬반 안에 정의와 인권 활동을 담당할 전문가를 두고 각 지부는 그것을 우선적 사목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각 지부와 중앙에 정의평화 담당자가 임명됐다. 그때부터 정의구현 활동은 우리 골롬반에서 아주 중요한 활동이 됐다.

오기백 신부가 창립 100주년을 맞아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서울 본부 뜰에 처음 세워진 골롬반 성인의 동상을 소개했다. ⓒ김수나 기자

(문) 한국 사회의 심각한 빈부격차와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신자들이 갖춰야 할 자세나 역할이 있다면?

오 신부 : 영성생활과 일상생활을 잘 연결시키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성당 중심으로 하게 된다. 현장 중심의 신앙생활을 좀 더 강조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교리에서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다 배우지만 결국 강조되는 신앙생활은 본당의 전례와 종교적 의무다.

가끔 본당에 나가 주보 뒷면을 보면 본당에서 무엇을 하는지가 다 나오는데 그것을 분석하면 주거문제, 빈부격차, 사회에서 고립된 이들에 대한 프로그램 등은 찾아보기 힘들고 핵심은 전례나 성당 행사다.

사실 쉬운 답은 없다. 왜냐면 본당에서 그런 고민하는 사목자들이 많아도 교회가 크면 클수록 제도화되기 때문이다. 제도의 핵심은 계속적인 유지이기 때문에 사목자들은 이런 고민에만 빠져 있게 된다.

한 개인이 제도 앞에서 무력감을 많이 느낀다. 신자들이 신앙적 차원에서 사회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무엇을 해야 되겠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입장을 정리하는 게 이 현실에서는 힘들다.

또한 사회 제도를 바꾸라고 요구한다면 매스컴이 급진주의자로 몰아간다.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건설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 사회적인 분위기를 봐서도 참 힘들고 사람들 입장도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더라도 우선 소그룹으로 모여서 우리 현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으면서 작은 협동을 시도할 수 있다. 서울대교구의 선교본당 활동 같은 예가 있다. 사람이 한 가지 작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자신을 얻으면 조금씩 더 고민을 하게 된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문) 골롬반회에는 교회 안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구체적 정책이 있는가? 또한 이를 위해 교회 전반에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오 신부 : 평신도 선교사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거의 30년이 됐다. 처음 시작할 때 예상하지 못했는데 지원자의 90퍼센트가 여성이었다. 우리 교회가 각 단위에서도 여성 참여가 많이 이뤄져야 한다.

교회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고 같은 존엄성을 갖고 하느님은 모든 이를 똑같이 사랑하시는데 우리 교회제도는 그렇지 않다.

이 제도는 하느님이 만드신 것도 예수님이 만드신 것도 아니다. 역사의 흐름에서 우리 인간이 구조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런데 오래된 구조라서 변화시키기는 힘들다.

1980년대 초에 사당동 성당 주임이었던 마 미카엘 신부 이야기를 예로 들겠다. 당시에는 여자 복사가 없었는데 어느 날 5학년 여자아이들이 와서 복사를 하고 싶다고 아주 강하게 주장하며 교황한테 편지를 보내겠다고 했다.

마 신부님이 아이들에게 김수환 추기경에게 편지를 쓰도록 설득해서 추기경에게 전달했는데 추기경이 아이들에게 마음을 이해하며 지금 교회의 규칙 때문에 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될 거라면서 복사 외에 신부님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우편으로 답장을 받은 아이들이 추기경님의 편지를 받았다고 너무 좋아서 자랑을 하더니 복사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고 했다. 30년밖에 안 된 이야기인데 지금 어느 본당을 가더라도 여자 복사들이 있다.

당시에는 여자가 복사를 하면 신부도 될 가능성이 있어서 안 된다고 얘기됐었지만 결국 시간이 문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 흐름을 보면 아마 몇 년 안에 여성 부제가 우리 교회에서 허락될 것 같다. 지금 성공회에는 여성 사제가 있고, 아일랜드에는 여성 성공회 주교도 있다.

(문) 일부에서 ‘선교’는 ‘세례자 늘리기’로 이해하는데 골롬반회가 생각하는 선교의 핵심은 무엇인가?

오 신부 : 선교의 핵심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핵심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중요하다.

하느님의 자녀가 어떤 사람인가. 성당 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일 뿐일까? 아니면 전체 생활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인가?

예를 들어 빈부격차의 현실에서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지난 주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입한 지 두 번째 맞는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었다. 교황님은 어려운 사람을 초대해 같이 식사를 나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참된 선교를 하는 교회의 모습이지 않나? 나눔 중심으로 살고, 신분으로 사람을 구별해서도 안 된다. 핵심은 우리 모두 다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의 사랑을 똑같이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 사제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평신도 선교사는 왜 중요한가?

오 신부 : 세계적으로 주는 추세인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하나는 많은 이들이 현 교회 제도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의 경우 많은 부모들은 지난 몇 년 동안의 스캔들이나 여성 참여 제한 때문에 자녀가 사제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

이 문제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긍정적으로 본다면, 교회가 좀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사제는 어떤 사람인가, 사도직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선교의 핵심은 무엇인가란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 모두 하느님 안에서 소중하고 평등하며 하느님은 각자 유일한 모습으로 우리를 통해 역할하시는데 지금 현대 교회는 이것을 막는다고 생각한다.

사제, 평신도라는 개념이 조화를 이뤄서 어떻게 하면 모두 한 공동체에서 가족처럼 봉사할 수 있는 새로운 교회를 만들 수 있을까가 하느님의 초대다.

교회 자체도 조금씩 변화되고 있지만 아직 멀다. 회개의 여정이 일생의 과제인 것처럼 제도도 마찬가지다. 하룻밤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고 희망적으로 본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평신도 선교사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것 아닌가.

오기백(Daniel O’Keeffe) 신부는 1951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1975년 사제품을 받고, 1976년 한국에 들어왔다. 광주대교구 흑산 본당 보좌, 인천교구 노동사목, 서울 봉천9동 빈민사목 활동 등을 한 뒤 1998년-2004년 동안 한국지부장을 지냈다.

2005년부터 5년 동안 선교홍보와 교육을 담당하다 2010년에 다시 한국지부장이 됐다.

한편, 골롬반회는 85년 전인 1933년 한국에 파견된 10명의 회원이 전남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시작, 그간 278명의 선교사가 한국에 파견됐고, 이곳에서 평생을 봉헌한 선교사 23명이 전국 각지에 묻혔다.

그동안 한국지부는 현재 9개 나라에서 평신도 선교사 11명, 지원사제 8명, 골롬반회 사제 14명이 선교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에서 모셔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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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김석준

등록일2018-12-04

조회수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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